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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이름의 덫 - 완전함에 대한 강박

by memiin 2025. 4. 15.

완전한 행복 관련 사진
행복이라는 이름의 덫 - 완전함에 대한 강박

 

“완전한 행복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완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그 의미는 섬세하게 뒤틀리기 시작합니다.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완벽함을 향한 집착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지를 서늘한 시선으로 그려낸 심리 스릴러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한 여성의 강박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파국의 연쇄, 그리고 행복이라는 말 뒤에 숨겨진 폭력성과 위선을 정유정 특유의 집요한 문장력으로 풀어냅니다. 이 글에서는 『완전한 행복』이 보여주는 삶과 인간관계의 민낯을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분석해 보겠습니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덫 - 완전함에 대한 강박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은 행복이라는 긍정적 단어 속에 감춰진 위협적인 집착을 다룹니다. 주인공 신유나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완벽하게 설계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행복’이란 결핍도, 불편함도, 갈등도 없는 상태이며, 오직 통제 가능한 요소만 존재하는 환경입니다. 행복의 조건은 완벽한 질서와 절대적 배제입니다.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누구든 — 아이든 어른이든 — 그녀의 세계에서 삭제되어야 할 장애물일 뿐입니다.

유나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딸 지유를 데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며 재혼합니다. 그러나 그 가정조차도 ‘사랑’보다는 ‘설계’의 대상입니다. 재혼한 남편 은호의 아들 노아는 그녀의 계획에 맞지 않는 존재였고, 결국 배제 대상이 됩니다. 유나는 아이를 제거하려는 극단적 행동조차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녀가 믿는 행복은 타협과 조화가 아니라, 정리와 통제의 산물입니다.

더욱 무서운 점은 유나가 자신의 행동을 ‘사랑의 실천’으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가족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헌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헌신은 병적인 통제와 착각 위에 세워진 구조물입니다. 유나의 눈에는 가족도, 아이도, 타인도 모두 하나의 ‘부품’일 뿐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위해선 어떤 부품이든 교체하고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신념이 그녀의 사고방식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얼마나 쉽게 강박적 통제와 배제의 폭력성으로 치닫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현대 사회는 완벽한 가족, 완벽한 일상, 완벽한 SNS 피드를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유나는 그런 사회의 극단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로, 독자에게 불편한 경고를 남깁니다.

유나가 아닌 타인의 눈으로 본 행복

『완전한 행복』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를 주인공 유나의 시점이 아닌, 주변 인물의 시선으로 풀어간다는 점입니다. 작가는 딸 지유, 남편 은호, 언니 재인 등 다양한 인물의 내면을 통해 유나라는 존재를 다층적으로 조망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독자는 유나의 행동을 더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보게 되며, 그녀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세계에 갇혀 있는지를 또렷이 인식하게 됩니다.

특히 딸 지유의 시점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유나는 지유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감시와 통제, 그리고 일방적 기준에 기반한 폭력일 뿐입니다. 지유는 엄마가 주는 사랑을 의심하면서도 동시에 갈망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품게 되며, 점차 그 사랑의 본질을 눈치채고 혼란스러워합니다. 유나는 지유를 '완벽한 아이'로 만들기 위해 강요하고 조율하며, 지유는 그 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기 시작합니다.

남편 은호 역시 유나의 피해자입니다. 처음엔 그녀의 단정한 말투와 세심한 배려에 매료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사랑이 통제가 목적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구조 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점차 침묵하게 됩니다. 그는 목소리를 잃어가는 인물로, 유나의 완벽주의적 가족설계 속에서 점점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또한 유나의 언니 재인은 유일하게 유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인물로, 유나의 강박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닌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깊은 결핍임을 암시합니다. 재인은 유나가 어릴 때부터 가졌던 ‘모든 걸 완벽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회상하며, 지금의 비틀어진 유나를 이해하려 애씁니다. 이러한 다양한 시점은 유나를 단순한 악인으로 소비하지 않고, 한 인간의 파국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각을 제공합니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 - 완전함이 아닌 불완전함을 껴안는 용기

정유정은 『완전한 행복』을 통해 독자에게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집요하게 던집니다. “당신이 말하는 행복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인공 유나는 오직 자신만의 기준으로 ‘이상적인 삶’을 설계하고, 주변 사람들 또한 그 틀 안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배려가 아닌 조작이 되고, 가족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그녀가 말하는 행복은 결국 진정한 관계가 배제된 채, 일방적인 소유와 통제만이 남은 감옥입니다.

작가는 유나의 모습을 통해 ‘완전한 삶’이라는 개념 자체에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원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생에는 예기치 못한 갈등과 변수, 슬픔이 존재합니다. 그 불완전함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용기야말로 인간다움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유나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세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며, 통제와 배제를 통해 완벽한 행복을 구축하려 합니다. 이 믿음은 결국 그녀 자신과 주변 모두를 파괴로 몰아넣습니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완벽한 삶을 요구합니다. SNS에서는 완벽한 가족, 완벽한 육아,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이 넘쳐납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하고, 때로는 그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자신을 꾸미고 통제합니다. 정유정은 이처럼 ‘완전함’에 대한 강박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누구나 다르게 정의할 수 있지만, 타인을 짓밟고 자신까지 망가뜨리는 방식은 결국 진짜 행복이 될 수 없습니다.

『완전한 행복』은 그래서 단순한 심리 스릴러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처한 내면의 거울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개념의 위험성과 허상을 날카롭게 짚어낸 문제작입니다. 정유정은 말합니다. 진짜 행복은 결핍을 인정하고, 상처를 받아들이며, 불완전한 타인과 관계 맺는 그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이 작품은 그 메시지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새기게 만듭니다.

마무리

『완전한 행복』은 심리 스릴러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본질은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입니다. 정유정은 탁월한 문장력과 구조 속에 인간의 내면을 해부하듯 파고들며,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 책을 덮은 뒤, 당신은 물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행복을 꿈꾸고 있는가?” “그 행복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는가?” 그런 질문이야말로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울림일 것입니다.

정유정 작가는 『7년의 밤』, 『28』, 『종의 기원』 등으로 잘 알려진 한국의 대표 소설가입니다. 심리 스릴러 장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왔으며,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집요한 문체로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