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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 『모순』 다시 읽기 — 삶의 균형과 감정의 진심을 찾아서

by memiin 2025. 4. 8.

[모순] 표지

 

1988년에 발간된 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20대 여성 안진진의 일상, 사랑, 가족, 인간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감정과 모순을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소설입니다. 당시 20대가 읽기에도 공감되는 이야기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아도 새로운 통찰과 감정이 찾아옵니다. 특히 진진이의 감정선과 내면의 갈등에 집중해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번에는 『모순』을 통해 ‘엄마와 이모’, ‘나영규와 김장우’라는 두 축으로 진진의 내면 여정을 정리해보았습니다.

👩‍👩‍👧‍👧 엄마와 이모 – 두 여성의 삶을 통해 비추는 인생의 양면

주인공 안진진의 엄마와 이모는 쌍둥이 자매로, 닮은 외모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이들의 삶을 바라보는 진진이는 "어떤 삶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품으며 스스로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됩니다.

진진의 엄마는 전통적인 인내와 희생의 상징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남편과 자식들을 최우선으로 하며 살았고, 아버지의 무관심 속에서도 진진이 별 탈 없이 자랄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의 보이지 않는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엄마는 물질적인 풍요를 줄 수는 없었지만, 진심 어린 헌신과 사랑으로 가족의 울타리를 지켜낸 존재였습니다.

반면 이모는 자유와 자아실현을 선택한 인물입니다. 결혼을 포기하고 백화점에서 일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한 독신 여성으로 살아갑니다. 세련된 외모와 당당한 태도는 현대 여성의 한 전형처럼 보이지만, 때때로 외로움과 갈등을 드러내며 진진의 집을 찾아오곤 합니다. 겉보기에는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삶 같지만, 결국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과 정서적 허기가 존재합니다.

이 두 여성의 삶은 정반대이지만, 공통적으로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엄마는 희생했지만 외면당하고, 이모는 자유로웠지만 외로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진진은 이 둘을 통해 어떤 삶도 일방적으로 옳거나 틀리지 않으며, 모든 삶에는 모순과 대가가 함께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그녀는 ‘희생과 자아실현’, ‘안정과 자유’, ‘전통과 개인주의’라는 대립된 가치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게 됩니다.

💑 나영규와 김장우 – 진정성의 무게와 조건 사이에서

진진은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그러나 이 갈등은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아닌, 삶의 방향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영규는 대학 시절부터 연인이었던 인물로, 경제적으로 부족하지만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입니다. 진진에게 위로와 안정을 주는 존재이며, 조건보다 진심을 중시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반면 김장우는 좋은 집안과 안정된 직업, 세련된 외모까지 모두 갖춘 '이상적인 조건'의 남자입니다. 진진은 처음에는 그에게 끌리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와의 관계에서 정서적인 거리감을 느끼고, 그의 말과 행동이 계산된 것처럼 느껴지며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진진은 결국 나영규를 선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선택이 아니라, 불완전한 현실 속에서 따뜻함과 진심을 선택한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결정은 『모순』의 주제와 맞닿아 있으며, 진진의 내면 성장을 상징하는 결정적 순간입니다.

나영규는 사회적으로는 부족할 수 있지만, 늘 진진의 곁을 지키며 변함없는 감정을 전달합니다. 진진이 조건보다 감정, 외면보다 내면을 중시하게 되었다는 점은 그녀의 가치관이 변화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선택은 또한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누구의 기대나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진진 자신의 마음과 가치에 충실한 결정이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흔들리는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여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 모순을 껴안고 살아가는 성숙함

진진은 삶의 모순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를 통해 성숙해집니다. 엄마와 이모, 나영규와 김장우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끝내 그녀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따라 길을 선택합니다.

진진이 선택한 삶은 완벽하거나 안정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온기와 진심이 있는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녀는 더 이상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이란 본질적으로 모순으로 가득하며, 그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다움임을 받아들입니다.

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삶의 일부로 인정하는 진진의 태도는, 우리가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선택지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완벽한 정답이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성숙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처럼 『모순』은 삶의 회색 지대를 포용하며, 각자의 진심에 기반한 선택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길임을 보여줍니다. 진진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 아웃트로 — 지금 우리의 모순과 마주할 시간

『모순』은 단지 한 여성의 성장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며 부딪히는 모든 갈등, 선택, 관계의 모서리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

진진이 걸어온 길은 우리 모두가 겪는 인생의 축소판일지도 모릅니다. 희생과 자유, 조건과 진심, 안정과 불안 사이에서 우리는 오늘도 모순 속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모순을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양귀자의 『모순』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